결국 전두환 광주재판 출석..
오늘 드디어 전두환 재판 열립니다. 전두환이 광주지법으로 재판 받으러 오전에 자택에서 출발 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그 재판정이 서울이 아닌 광주라서 더욱 관심이 높은듯 합니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11일 오전 자택을 나서는데요 10일 경찰 등에 말에 의하면 전두환 씨는 11일 오전 8시 3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승용차를 타고 광주지법으로 출발합니다 서대문경찰서 소속 2개 형사팀 10여명이 전두환 씨와 동행할 예정되었습니다 형사들은 당일 오전 7시께 자택 앞에서 대기 한 뒤 전두환 씨가 탄 승용차가 출발하면 승합차 2대를 타고 따라갈 계획입니다


전두환 씨는 준비된 승용차에 부인 이순자 여사, 변호사와 같이 탑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 형사팀과 별개로 전두환 씨의 경호를 맡은 경찰 경호대도 경호차를 타고 전두환 씨를 따라 광주로 향합니다 평소 전두환 씨의 경호에는 경찰관 5명이 투입됐습니다 전두환 씨가 광주로 내려가서서서는 동안 경호 인력 충원 계획은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전달해졌습니다.

경호대는 전에 서울에서 광주까지 동선을 점검하고, 광주지법을 미리 방문해 경호 계획을 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전두환 씨의 동선에 따라 교통을 통제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재판 시간에 맞출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면 조처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어요.



광주에 도착하기 전두환 전두환 씨는 모처에서 점심을 먹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정대로라면 전두환 씨는 오후 1시 30분께 광주지법에 도착합니다 경찰은 전두환 재판 받기 위해서 법원에 도착하면 법원이 발부한 구인장을 집행할 계획입니다 단, 자진 출석과 고령을 이유으로 수갑은 채우지 않습니다.


11일 전두환 씨의 자택 앞과 광주지법 앞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력이 투입됩니다 당일 오전 7시 30분께 보수 성향 단체인 자유연대 등은 연희동 전두환 씨 자택 앞에서 전두환 대통령 광주재판 결사반대 집회를 열리는데요. 200~300명이 집결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찰은 평소 자택 경비 인원 외 별도의 경비 인력을 투입할 방침입니다 평소 전두환 씨 자택 경비에는 의경 1개 중대가 배치됐습니다 경찰의 한 경비 담당자는 "당일 상황에 따라 경비 인력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전두환 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5·18 민주화운동 그때 그때 그때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면서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돼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작년 8월 27일 첫 공판을 앞에두고 이순자 여사가 남편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며 불출석 의사를 밝혔고, 올해 1월 7일 재판도 독감을 이유으로 출석하지 않으면서 담당 재판부에서는 전두환 씨에게 구인장을 발부했어요. 전두환 씨의 재판은 11일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립니다.


조비오 신부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했던 조비오 신부는 지난 2016년 9월21일 향년 78세의 일기로 선종했어요.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그는 조화 대신 쌀을 받아 이웃에 전달하는 사랑을 실천했어요. 또 통장 잔고는 0원이었으며 마지막 남은 자신의 몸과 책까지 기증했어요.


조비오 신부는 1938년 4월1일 광산구 본량면에서 태어나 1962년 가톨릭대학 1기생으로 입학해 1969년 12월16일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사제의 길을 걷게된 그는 1976년 계림동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소화자매원과 인연을 맺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거리를 헤매고 있는 노숙자와 폐결핵 환자를 돌보기 위한 복지시설과 지적 장애인 생활시설인 소화 천사의 집을 열기도 했어요. 그는 또 사회 현실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군부 독재시절 시국미사를 집전하면서 신군부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어요.



1980년 5·18을 겪으면서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뛰어든 조비오 신부는 시민수습위원으로 했었다는 이유으로 신군부에 의해 체포돼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이 옥고를 치뤘습니다 이후 내란음모 핵심 동조자로 찍혀 신군부로부터 미행을 당하기까지 했어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조차 제약을 받을 정도의 구속되었던 삶이었지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조비오 신부는 2009년 8월18일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일 와의 인터뷰에서 "5·18 이후 미행과 상경 제지, 밤샘 조사로 불면 고문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회고했어요.




조비오 신부는 5·18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조선대 학교법인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소화자매원 이사장과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아리랑 국제평화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2008년 1월16일 국내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인 교황의 명예사제 몬시뇰에 임명됐습니다


이후 조비오 신부는 갑자기 쓰러진 뒤 암세포가 온몸에 퍼졌다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선종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