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진실 11주기 90년대 최고의 톱스타로 활약했던 배우 故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지 11년이 됐습니다. 고인은 지난 2008년 10월 2일 자탁에서 사망한 채 발견 됐습니다. 향년 40세. 故 최진실은 1968년생으로 지난 1988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어요. 그해 MBC 특채 탤런트로 합격해 배우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는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 "우리들의 천국" "약속" "질투" "별은 내 가슴에" "그대 그리고 나" 등에 출연하면서 국민배우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5살 연하의 야구선수 故 조성민과 결혼했지만 4년 만에 파경했어요. 그때 당시 슬하에 환희 준희 남매가 있습니다. 故 최진실은 두 자녀를 양육하면서 배우로 돌아왔습니다. "장밋빛 인생"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복귀했어요.
그러나 여러 루머에 휩싸이며 마음고생을 하던 최진실은 결국 에는 생을 마감했어요. 故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지는 어느세 11년이 흘렀다. 또 故 최진실의 유해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갑산공원에 안치되었습니다. 최진실 11주기, 10년이나 넘었네요.
최진실 가족의 비극사.
드라마에서도 이런 비극의 가족사는 없었습니다. 탤런트 최진실과 동생 최진영에 이어 6일 최진실의 전 남편인 전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이 숨진 채 발견 됐습니다. 인기스타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던 스타 최진실·진영 남매의 죽음에 이어 전 남편인 조성민까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특히 세 사람 모두 만 39세 나이에 모두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은 충격적입니다.
최진실·진영 남매는 이혼을 한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두 사람은 차비가 없어 걸어다니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어요. 수제비만 먹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스무살이던 1988년 CF로 데뷔한 최진실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대사가 인기를 얻은 후 연예계 신데렐라로 떠올랐습니다. 이어 데뷔한 동생 최진영도 1990년대 드라마와 영화의 주·조연으로 활약했어요. 남매의 우애는 연예계에서도 유명했어요. 1999년 최진영이 "스카이"라는 예명으로 가수 데뷔했을 때 최진실은 동생의 앨범 홍보에 발벗고 나섰고, 각종 예능 프로 그램에 같이 출연했네요. 최진실과 조성민은 1998년 12월 인연을 맺었습니다. 최진실은 그때 그때 당시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이던 조성민과 KBS2 출연을 계기로 의남매로 정을 쌓아오다 2000년 12월 결혼했어요. 당대 최고 여배우인 최진실과 일본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의 결혼은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았 습니다. 그때 그때 당시만 해도 연상연하 커플이 생소해 조성민이 5살 연하라는 사실도 눈길을 끌었 습니다. 이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파경을 맞았다는 기자 회견을 열었고 이후 두 사람은 별거 생활을 해왔습니다. 2004년 8월 조성민이 최진실 집에서 폭력을 휘둘러 긴급체포됐고, 결혼 3년9개월 만인 2004년 9월 결국 에는에는 합의 이혼했어요. 환희와 준희 남매를 둔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최진실은 연예활동을 접고 연기 인생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때 곁에서 힘이 되어 준 사람이 동생 최진영입니다. 2005년 최진실은 KBS2 드라마 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맹순이" 역으로 시청자들을 울리며 재기에 성공했어요. 2008년에는 MBC 로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듯했어요. 그러나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 하고 그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택에서 숨진 누나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이 바로 최진영입니다.
최진실은 숨진 뒤에도 불미스러운 사건을 겪어야 했어요. 2009년 8월 경기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에 있는 고인 납골묘가 파헤쳐져 유골함이 도난당 했고, 유골함은 도난 21일 만에야 되찾아 다시 안치됐습니다.
최진영은 조카들을 돌보며 누나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애써 왔습니다. 한 방송 에서 그는 "악몽에 시달려 밤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고 밝혀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어요. 한동안 방황하던 최진영은 "누나가 생전에 소원하던 대학에 진학하겠다”며 2009년 한양대 예술학부에 입학 했고, 새로운 기획사와 계약하는 등 열의를 보였 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누나가 떠난 지 1년5개월 만인 2010년 3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어요. 전 부인과 처남을 먼저 보내준 조성민의 삶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팔꿈치 부상에 수술을 받았으나 재기에 실패해 2002년 요미우리를 떠났는데요. 제빵 사업가와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다 2005년 한화에 입단했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2008년 최진실이 사망한 후 두 자녀에 대한 친권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됐습니다. 이로 인해 친권자가 사망하면 이전 배우자가 자동으로 친권을 갖게 되는 일을 막도록 하는 소위 "최진실법"이 만들어졌습니다.
2011년 두산 2군 코치로 새 출발한 그는 작년 말까지 선수들을 지도했지만 지난달 초 두산과 재계약을 포기했어요. 굴곡 많은 인생을 살던 조성민도 끝내 희망을 놓고 말았습니다. 그는 6일 서울 도곡동에서 숨진 채 발견 됐습니다. 경찰은 자살로 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족의 연이은 자살을 놓고 "가족 구성원의 자살이 유가족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또 다른 자살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경북대병원 정신과 원승희 교수는 "자살자 유가족들은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살로 문제해결을 하려는 경향성을 보인다”고 말했어요.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운데, 자살자 유가족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내 가족도 이렇게 힘들어서 자살을 선택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 실제로 자살을 택하기 쉽다”고 말했어요.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는 특히 "자살자 유가족이 "나 때문에 괴로워 자살 했다"는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객관적 상황을 설명해 주고 심리치료를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